비트코인 채굴, 더 이상 '채굴'만 하지 않는다
최근 비트코인 채굴 기업들의 전략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채굴기를 많이 설치해 해시레이트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과 채굴 채산성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제는 '채굴해서 팔기'보다 '직접 매수해서 보유하기'로 전략을 바꾸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마라톤 디지털 홀딩스(Marathon Digital Holdings)이다. 이 기업은 채굴 수익이 낮아지는 구간에서는 오히려 돈을 빌려 비트코인을 직접 매수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단순히 채굴을 통해 이윤을 남기기보다, 저평가된 시점에서 비트코인을 확보하고 가격 상승 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채산성이 낮다는 것은 비트코인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시점에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유리할 수 있으며, 실제로 마라톤은 이미 2만 개에 가까운 비트코인을 보유 중이다. 현금 흐름이 발생하는 채굴 사업 기반이 있으니, 자산 확보에도 유리한 구조다.
이러한 변화는 채굴기업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단순한 채굴자가 아닌, '디지털 자산 운용사'로서의 변모가 시작되고 있으며, 향후 이 같은 모델이 주요 채굴기업들의 공통된 전략이 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주식시장 변동성, 비트코인보다 더 크다?
채굴기업들은 스스로를 ‘비트코인 레버리지 자산’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때, 이들 기업의 주가는 더 크게 오른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주요 채굴기업들의 주가 변동성은 비트코인 자체보다 2~3배 더 높은 경우도 많다.
이는 기관 투자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시장이 상승할 때 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채굴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변동성을 '주가 추진력'으로 삼아 투자 유치를 확대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자본 유동성과 비트코인 매수 능력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하면 채굴 수익도 늘어나고, 보유 자산의 가치도 커진다. 동시에 주가 역시 상승하면서 기업 전체의 가치도 뛰게 된다. 이처럼 주식시장 내에서 비트코인 프록시(Proxy) 자산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전략은, 기존의 단순한 채굴 비즈니스 모델과는 명확히 구분된다.
특히 마라톤 디지털 홀딩스와 같은 기업은 '디지털 금 채굴업체'라는 정체성을 넘어, 실질적인 디지털 자산 투자기업으로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더 넓은 시야에서의 수익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변화다.
채굴기의 미래, 중국을 넘어 미국으로
전통적으로 비트코인 채굴기의 생산과 기술력은 중국이 주도해 왔다. 대표적인 업체는 비트메인(Bitmain)의 S19 시리즈로, 전 세계 채굴시장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장비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 기업들이 이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운영하는 블록(Block, 전 스퀘어)이다. 블록은 기존의 캐시 앱 사업 외에, 자체 채굴기를 개발하며 채굴 하드웨어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특히 블록의 채굴기는 미국 시장 내에서 높은 기대를 받고 있으며, 기존 비트메인의 독점 구조를 깨트릴 수 있는 가능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전력 인프라와의 통합이라는 측면도 주목할 만하다. 일부 채굴기업은 발전소를 직접 인수해 전력 생산과 채굴을 통합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전력 단가를 낮추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방식이다. 예컨대, 데이터 센터 활용, 남는 전기 활용 등으로 채산성이 낮은 구간에도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이 같은 전략은 채굴기업이 단순한 ‘디지털 금광’이 아닌, 21세기의 철강업 혹은 전력산업과 유사한 구조로 진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미국 정치권 내에서도 자국 내 채굴기술과 전력산업의 통합이 국가 안보 차원에서 중요하다는 시각이 확대되면서,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와 정책적 지원이 강화되고 있다.
비트코인 시대, 기업 전략이 미래를 바꾼다
비트코인 가격만을 바라보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기업들의 전략과 생존 방식이 이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단순 채굴을 넘어서 자산을 직접 매수하거나, 전력 사업과 통합하거나, 채굴기 생산까지 도전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보면, 향후 비트코인 생태계의 주도권은 단순히 채굴을 잘하는 기업보다, 전략적으로 시장을 이끄는 기업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마라톤 디지털 홀딩스, 블록, 라이트 스파크와 같은 기업들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새로운 산업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투자자들도 비트코인 그 자체뿐 아니라, 비트코인 관련 기업의 전략 변화를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그 안에 다음 사이클의 기회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