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정치 전면에 등장하며 미국 내 비트코인 정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단순히 암호화폐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 전략 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서밋을 통해 비트코인을 중요한 국가 자산으로 명시하면서 시장에 큰 신호를 보냈다. 행정 명령을 통해 비트코인을 언급한 것은 정치적인 발언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정책 전환으로 읽혀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이 비트코인을 단순한 투기 자산이 아닌, 향후 경제 전략에서 중요한 위치로 끌어올릴 준비를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미 미국 정부는 수사와 압류 등을 통해 약 20만 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금처럼 안전하게 보관하는 ‘디지털 포트 녹스(Digital Fort Knox)’ 전략을 통해 향후 전략 자산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점은 미국 정부가 이 자산을 시장에 매도하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비트코인을 시장에 팔아 예산에 충당하거나 벌금 형식으로 활용했으나, 이제는 이 자산을 매도하지 않고 보관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는 시장 입장에서는 공급 압박이 줄어드는 호재로 작용하며, 장기적인 가격 지지선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의 암호화폐 보유 상황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비트코인의 상당량이 중국인들의 손에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ETF 등을 활용해 점진적으로 보유량을 늘려가는 동시에 자국 내 비트코인 생태계를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요 확대가 아닌, 세계 금융 질서 속에서 미국이 중심이 되는 전략적 구상임을 의미한다.
스테이블 코인: 국채 시장의 새로운 수요처
트럼프 행정부가 비트코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산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다. 비트코인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동안, 미국 정부는 국채 수요의 장기적인 기반을 다지기 위해 달러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암호화폐 육성 차원을 넘어서, 미국의 국가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국채나 달러 예금과 1:1로 매칭되는 디지털 자산으로, 블록체인 기반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디지털 달러 역할을 수행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스테이블 코인을 적극 활용하여 외국인 자금의 유입을 촉진하고, 미국 국채의 자연스러운 매수 기반을 형성하려 한다.
특히 이번에 논의된 스테이블 코인 관련 법안은 100억 달러 이하의 발행량을 가진 기업은 미국 주정부의 허가만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 조치로 인해 페이팔, 코인베이스 등 기존 기업뿐만 아니라 IT 기업, 심지어 한국의 네이버와 같은 플랫폼 기업도 외국 법인을 통해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가능해진다.
이 구조는 미국 국채 수요를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인프라를 의미하며, 글로벌 통화 질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미국산 스테이블 코인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표준화된다면, 기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은행 역시 이 흐름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제도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애국주의와 글로벌 금융질서의 충돌
트럼프 행정부의 암호화폐 전략에는 미국식 애국주의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트럼프는 미국산 암호화폐를 선호하며 XRP, 솔라나, 에이다와 같은 미국 기반 프로젝트를 전략적으로 밀고 있다. 반면 테더(USDT)와 같은 비미국산 스테이블 코인은 규제 측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으며, 미국 국채 구매를 제한하려는 시도도 포착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미국 내 자산의 성장과 보유를 장려하는 동시에, 외국 기업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전략이다. 특히 리플(XRP)과 같은 기업이 정치적 로비를 통해 미국 내 영향력을 확장하고, 외국 기업의 시장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가 마련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 경쟁을 넘어서, 블록체인 산업 전반에 대한 규제와 법률적 접근을 정치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글로벌 금융 질서와 충돌할 수 있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암호화폐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면서, 국제적인 금융 시장에서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확산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은 이를 통해 달러 패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자국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세계 각국의 통화 정책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원화의 위상이 점점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무역 결제에서 10% 이상이 스테이블 코인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금융 시스템이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급성장은 국내 경제에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론
트럼프 행정부의 암호화폐 전략은 단순한 규제 완화나 육성을 넘어서, 국가 전략 자산 확보와 미국 국채 시장의 안정을 위한 복합적인 접근이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해가고 있으며,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재정의 핵심 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이해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는 향후 금융 주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지금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닌, 글로벌 금융 패권 재편의 시작점이다.